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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해외/벨기에

벨기에, 벨기에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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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를 가기전.. 벨기에를 알아보자 





1. 역사


( 4세기) 벨기에는 4세기 무렵부터 중앙구릉지대의 삼림을 경계로 북쪽으로는 플라망족, 남쪽으로는 왈론족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 9세기) 그러다 9세기에 샤를마뉴 카를 대제에게 정복되었습니다.

(12세기) 12세기부터 모직물 공업이 발달하여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쳤습니다.

           겐트, 브뤼헤 등 플랑드르의 모든 도시가 모직물 공업으로 매우 발전하게 됩니다.

(14세기) 모직물 업자간의 내분, 도시 부르즈아와 지방 농민의 반목으로 위기가 찾아옵니다.

           많은 모직공들이 영국으로 도피하면서, 양모공업의 중심이 영국으로 이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브르고뉴가의 세력이 벨기에로 진출하게 됩니다.

(15세기)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의 지배하에 놓이기 됩니다. 

           합스부르크가의 카를 5세가 1516년 에스파냐의 왕위를 계승하면서, 자연스레 벨기에는 에스파냐의 영토가 됩니다.

           카를 5세의 선정 아래, 벨기에는 르네상스를 맞이하며 플랑드르파라는 위대한 화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1555년 필립 2세가 즉위하면서 극단적인 카톨릭 보호 정책을 취했고, 신교도가 많았던 네덜란드는 1581년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합니다.

           벨기에는 카톨릭교도가 많았기 때문에 명목상 그대로 에스파냐 영토에 머물며 자치권을 획득하게 됩니다.

(17세기)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오스트리아 등 각국의 투쟁 무대가 됩니다. 이로 인해, 많은 성당이나 회화 작품들이 훼손되었습니다.

(18세기~) 에스파냐의 합스부르크가로부터 오스트리아의 핪부르크가에 지배권을 이양하여, 벨기에는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다가

             1789년 프랑스 혁명정부군이 두 번에 걸쳐 벨기에를 점령하면서 프랑스의 영토권을 확립합니다.

             1804년부터 10년간 나폴레옹 1세가 통치하였으나, 나폴레옹의 반그리스도교적 군국주의적인 정책은 벨기에 시민들의 반감을 사게 됩니다.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실패하자, 빈 회의에서 벨기에는 네덜란드에 병합됩니다.

             그러다 1830년 8월 혁명으로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여 1831년 벨기에 왕국으로 각국의 승인을 받았고, 
             1839년 런던회의에서 벨기에의 영세 중립이 보장됩니다. 

             1885년에는 본국의 80배가 넓은 콩고자유국을 영유하여 경제 대국이 됩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군이 벨기에를 점령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같은일이 되풀이됩니다.

             전후 벨기에는 베네룩스/북대서양조약기구 등에 적극적으로 가맹하고, 국토 방위와 경제적 번영을 이룩합니다.

             1960~62년에는 콩고 기타 지역의 독립에 따라 해외영토를 모두 잃게 됩니다,

          


사진. 브뤼셀 광장의 군인, 출처:AFP통신




2. 지리&기후

        


벨기에는 유럽 대육이 북해와 만나는 지점에 자리해 있습니다.

북부 지역은 북해와 네덜란드, 동부 지역은 독일과 룩셈부르크, 남부 지역은 프랑스와 접경하고 있습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로, 전체 국토면적은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한 크기와 비슷합니다.


벨기에는 북해와 접해 있어 온화한 해양성 기후를 보입니다.

겨울철 평균기온은 0~10도, 여름철에는 12~25도 정도로 살기 적당한 온도를 보입니다.

1년 중에서도 6~7월에 많은 비가 내리고, 3월은 비가 거의 오지 않습니다.

벨기에 대부분이 온대성 기후를 보이지만, 남부 일부지방은 지중해성 기후를 가지고 있습니다.

봄 가을에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데, 이는 실제 온도보다 체감온도를 많이 떨어뜨려 춥다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3. 정치

        

벨기에는 1933년 헌법 개정 이후 연방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입헌군주국(세습 군주)으로서 내각책임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의회제도는 상원과 하원으로 이루어진 임기 4년제의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사진. 벨기에의 지역정부 구성과 언어권공동체 구성


연방국가를 지향하는 벨기에는 3개 언어권공동체와 지역정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언어권공동체라 함은 네덜란드어권, 프랑스어권, 독일어권을 의미하며, 지역정부란 플랑드르, 왈로니아, 브뤼셀 등의 지방정부를 말합니다.

언어권공동체는 문화와 교육 등 사람과 관련된 정책을 다루고, 지역정부는 경제 및 도시계획 등 토지와 관련된 정책을 관장합니다.

연방정부는 국방, 외교, 조세정책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4. 경제

        

벨기에는 우리나라 경상남북도 크기의 국토와, 서울보다 작은 인구(약 1,100백만명), 부족한 자원 등의 불리한 요건을

자유무역, 외국인 투자유치 활동 등으로 극복하여 높은 경제성장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구매력 평가(PPP, Purchasing Power Parity)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은 4만 1,267 달러 수준에 올라 있습니다.





영국에 이어 산업혁명이 시작된 곳으로 풍부한 석탄을 바탕으로 공업을 일으켰고, 19세기 철강 산업에 이어 기초 화학공업, 유리와 크리스탈 제련 및

기차 바퀴 제조 등이 발달했습니다.


1835년 유럽 최초로 철도가 건설된 이래 증기기관의 혁신으로 영국보다 앞서 기관차의 대량 생산 체계를 갖췄고,

19세기 중반에는 세계 철도 산업의 선두국가로 나서게 되면서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의 열차 대부분을 공급하게 됩니다.

특히 1900년 파리의 초창기 지하철은 모두 벨기에산이었고, 부다페스트 및 나폴리 등에도 수출하게 됩니다.



사진. 리에쥬 역사 전경



플란더스지방은 영국보다 훨씬 앞서 직조 기술이 발달하여 방직, 기성복 산업이 유명했습니다.

벨기에산 카페트는 프랑스 왕실에서 고집할 정도로 최고급품이었다고 합니다.


현재에는 서비스 산업이 국민총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산업 구조가 변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배경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주변국을 연결하는 지리적 위치를 활용한 무역 및 중계역할이 있습니다.

상품교역의 약 50%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주변 3개국가 이루어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벨기에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으로 훌륭한 항구시설을 들 수 있습니다.

앤드워프(=안트부르펜)와 브뤼헤항은 빠른 성장을 하며, 기술 홍보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특히 유휴지에 창고시설을 유치하면서 앤드워프는 유럽 제2의 항구 및 물류 유통 시설로 자리매김 합니다.

유럽에서 장사하는 기업치고 앤드워프 물류센터를 거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우리나라처럼 부존자원이 적고, 주변 강대국 틈에 끼여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려야 했던 유럽의 소국 벨기에가 경제대국이 된 원동력은 

유럽 최고의 항만시설을 바탕으로 한 물류 기지로의 특화 작전이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사진. 앤드워프항의 물류 접안시설. 연간 1억톤이 넘는 물류를 수용한다


독일이 차량 속도제한이 없는 아웃토반으로 유명하다면, 엄청난 고속도로 망으로 유명합니다. 고속도로 뿐만 아니라 일반 도로도 밤새 가로등이 켜져 

야간에는 라이트를 켜지 않아도 될 정도이며, 어느 나라의 차량도 통행료를 내지 않습니다.

야간에 인공위성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을 보면, 유난히 눈동자 모양으로 반짝이는 곳이 있는데 바로 벨기에라고 하네요. 



사진.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찍은 사진. 유럽의 눈이라고 불린다. 벨기에 고속도로는 밤에 가로등이 매우 밝다


5. 교육


벨기에의 교육은 생후 18개월 이상이면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3~5세 어린이의 95% 이상이 유치원 교육을 받으며, 초등교육 6년은 의무 교육기간입니다.

중등교육도 6년 과정이며, 대학 진학을 하는 학생들은 1년 동안 더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대학 과정은 2년간의 교양 교육과 2년의 전공 과정으로 되어 있으며, 전공기간의 대부분을 졸업 논문 작성에 할애합니다.





1425년 설립된 카톨릭 루뱅 대학교는 지도로 유명한 과학자 메르카토르(1512~1594)를 배출한 대표적인 대학교이며, 언어 문제로 1970년 프랑서어권이 분리되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학교는 엄격한 유급 제도 때문에 동기생이 함께 졸업할 확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진. 벨기에 루벵 대학교



16세기 이후 벨기에는 인문과학, 지리, 수학, 제약 등의 분야에서 대단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높은 교육 수준과 쾌적한 환경으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 입니다.

철두철미한 연구와 개발은 문화적인 전통이며, 특히 우주 탐험에 있어 수많은 과학자들이 유럽우주국(ESA)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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